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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01 18:50
2011년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392  

2011년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

편집 - 조양희
서문 - 조양희

1장 아치울의 봄
따뜻하고 소박한 사람 - 노순자
모태 보존 - 송은일
자두꽃 고운님 - 한수경
꽃이 진 그 뜰에 다시 갈 수 있을까 - 유춘강
벚꽃나무 아래서 - 우애령
백일홍과 볼연지 - 이경숙
거기 품 넓고 따스한 큰 산이 있었네 - 최순희

2장 싱아는 여름에도 피고 지고
마두동 가냐고 묻는 말에 - 이혜숙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류지용
세번째 눈물 - 김경해
쌀바늘 세 개 - 박재희
새벽처럼 조용히 오셨다 - 김비
나의 선생님, 혹은 나의 슈퍼에고 - 이남희

3장 그 가을 동안
새벽빛 밝아오면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가는 당신 - 김향숙
떠나간 님을 그리워함 - 유덕희
내겐 너무도 특별한 인연 - 신현수
희망과 환상, 현실로 나를 깨우신 분 - 이근미
암, 헛살지 않았고말고 - 김설원
유쾌한 상상, 혹은 반란 - 권혜수

4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눈꽃 같은 당신의 이름은 - 장정옥
잡고 가던 언니 손 놓친 것 같은 마음 - 오세아
글이 되는 건 사랑이었다 - 김정희
우산꽂이 항아리 - 조혜경
박완서 선생님, 그대의 눈부심에 입맞춤해 - 조양희


소설가 박완서와 함께한 사십여 년
그 아름다운 뜰에서 우리 행복하였네

2011년 1월 22일 새벽. 우리 문단은 커다란 별 하나를 잃었다. 한국전쟁, 경제개발 등 질곡 많은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에 증인이 되어주었던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영면에 든 것이다. 향년 80세.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다, 1970년 나이 마흔에 뒤늦게 등단한 그는 마치 막혔던 봇물이 한꺼번에 터지듯, 지난 40여 년간 쉼 없이 작품을 쓰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자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육화된 원숙하고 따뜻한 작품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에 위안과 용기를 주었고, 그 세월 동안 그는 한국 현대사의 말 없는 관찰자, 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구도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또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사람에 대한 세밀하고 따뜻한 묘사와 인간 내면의 거침없는 서사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각박한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밀던 어머니이자, 동지였다. 그런 그이기에 독자들의 슬픔은 더 크다.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거기 품 넓고 따스한 큰 산이 있었네

그 슬픔의 한가운데 『여성동아』 문우회가 있다. 박완서 선생은 1970년 제3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1남 4녀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왔던 선생은 등단 이후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여 본격적인 여성문학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여성작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하였지만 삶과 사회에 대해 보여주는 깊고 넓은 시선과 지치지 않는 창작열은 그의 직계후배라고 할 수 있는 『여성동아』 출신 작가들의 길잡이이자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만남은 영원할 수 없다. 문우회와 함께하기로 한 팔순 생일잔치를 목전에 두고 암을 진단받은 박완서 선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으로 이어진 끈을 놓아버렸고, 그를 잃은 애통함과 허전한 마음을 모아 스물네 명의 『여성동아』 출신 작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팔순 잔칫상을 차렸다.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다.

박완서 선생님이 먼 길을 떠나시고서야 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커다란 나무 가까이에 있었는지를. 또한 그 커다란 나무 아래의 아늑한 그늘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이제 책장에 꽂힌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하나하나 되읽으며 허전함과 그리움을 달래야겠다. 그러면서 선생님 생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음속으로나마 해드려야겠다.
“박완서 선생님. 제게 선생님은 너무도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이셨습니다. 그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작가인 제가 있습니다. 선생님, 참 고맙습니다.”
-159쪽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는 박완서 선생과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근거리 지인들은 가까운 대로,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은 지켜본 대로,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본 소설가 박완서, 인간 박완서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 중에는 박완서 선생과 근 40년간 인연을 이어오며 그의 영광과 불행을 곁에서 지켜본 이도 있고, 작년에 갓 당선한 신인도 있다. 이들은 때론 투정을 섞어 이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탤런트 조인성을 좋아하던 만년 소녀 같던 박완서 선생의 모습(「꽃이 진 그 뜰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유춘강)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나 작은 것 하나까지 챙기던 생전 그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고(「백일홍과 볼연지」, 이경숙),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던 몸가짐을 흠모하기도 한다. 말상인 사람이 마두동에 가는 지하철이냐고 묻자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마두동 가냐고 묻는 말에」, 이혜숙) 박완서 선생의 엉뚱함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갑작스런 남편과 아들의 죽음 앞에 무너져 내리던 인간 박완서를 부둥켜안고 진혼곡을 올리기도 한다(「박완서 선생님, 그대의 눈부심에 입맞춤해」, 조양희). 하지만 이들은 마냥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만 있지 않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상처만 남는 것이 아니듯,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는 슬픔만 남은 황폐한 뜰로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당신이 떠나신 뒤 도서관 하나가 무너진 것 같은 상실감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하나의 도서관과 같았지요. 남은 우리들은 그 도서관에서 부끄러움이 무언지를 새롭게 깨우칠 거고 사람 비슷하게 살려고 애쓰는 힘을 얻기도 하겠지요. 당신의 그 도서관은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사람 비슷하게 살고 싶어하는 이들로 북적이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몸은 떠났지만 당신은 떠난 것이 아닌 거지요. 언젠가 당신이 가 계신 곳에 간다면 그때엔 당신께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꼭 그러고 싶습니다. 부디 그곳에서 당신이 만나고 싶어했을 소중한 이들과 행복한 해후를 하셨기를. 잘생긴 손자 자랑 하실 때 당신 얼굴에 떠오르던 그 미소가 당신 얼굴에 가득하시길.
-139~140쪽

“언젠가는 제 글도 자두처럼 맛있게 익겠지요”

새벽빛이 비추면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던 박완서 선생의 강한 의지와 생명력은 이제 새로운 싹을 예고한다. 물성이 사라져버린 공간을 글로 채운다고 그 허전함이, 슬픔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스물네 명의 작가들은 문학의 어머니처럼 여기던 박완서 선생과의 이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과 작품 활동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슬픔의 힘으로 맑게 정화시킨 새로운 작품을 써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더 강한 힘으로 문우회를 지켜내겠다고 말한다. 마치 기도처럼 보이는 이러한 다짐은 박완서 선생이 그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이 유산을 통해 잉태될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예감한다.

사랑하는 박완서 선생님!
다시 봄입니다. 곧 자두꽃이 필 것이고 열매를 맺고 땡볕에 익어가겠지요. 그런데 그 자두를 제일 먼저 드리고픈 선생님은 좁은 물길 너머에 계시네요. 매년 자두꽃을 보며 선생님을 생각하겠습니다. 맛있다고 하시던 그 목소리를 되풀이해서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진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제 글도 자두처럼 맛있게 익겠지요.
-39쪽

이제 우리 곁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며 위안을 주던 박완서라는 이름의 큰 작가는 사라졌다. 사진작가 구본창이 아치울의 집에서 찍은 표지 사진 속에서 박완서 선생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집에 더 이상 그는 살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그 현실감은 이 스물네 명의 작가들에게도, 그리고 그의 글을 사랑했던 우리에게도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은 시대의 지표를 만들고, 그 문학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박완서 선생을 만나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하여 그가 오랜 세월 뿌려놓은 씨앗들을 통해 문학으로 만개한 새로운 작가, 새로운 세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글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독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선생님은 정말 행복한 분이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 전쟁에 대한 증오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분노와 복수심이 글이 되지는 않더라고, 글이 되는 건 사랑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치열하게 써내린 많은 글들은 모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그분은 진정한 거인이었다.
-215쪽


하마 11-09-09 00:18
답변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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