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처럼 예쁜사람으로 자라렴” “사이좋게 노는게 더 아름다워”
10년간 도시락 편지로 세자녀 키운 소설가 조양희씨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소설가 조양희씨의 가장 큰 보물은 10년간 세 자녀에게 보낸 2000여 통의 도시락 편지이다. 조씨는 “사랑해, 널 믿는다” “엄마는 언제까지나 널 기다린다” “오늘 네 나무에게 행복하다고 말해 줬니?” 등의 내용을 담은 편지로 자녀들의 마음을 녹였다. 지난 1996년에는 아이들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도시락 편지’라는 책을 펴내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훌륭한 부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최근 ‘엄마의 쪽지 편지’라는 제목으로 11년 만에 재출간됐다. 현재 영국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딸 박진호씨 등 세 자녀를 훌륭하게 길러낸 조씨는 “논술을 가르치려 애쓰지 말고 편지와 일기 쓰기 등 작은 습관으로 글과 친해지게 하라”고 조언했다.
도시락 편지로 엄마의 사랑 전해
조씨는 첫째 진호가 유치원에 갈 무렵부터 도시락 편지를 썼다. “요구르트를 받을 때는 꼭 줄을 서야 한다” “유치원 마치면 친구들 물건까지 잘 정리해 놓고 오너라” 등의 내용이었다. 당시 진호는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께 읽어달라고 하렴”이라며 도시락에 넣어줬다. 편지를 읽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끼길 바라서였다. 아이들에게 답장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쌀 때면 아이들 각자에게 써줄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이가 싫어하는 시금치를 쌀 때면 “뽀빠이도 시금치를 먹고 올리브를 살렸대. 너도 시금치 먹고 오늘 체육시간에 힘내”라고 썼다. 취나물처럼 낯선 반찬을 쌀 때는 즉석에서 취나물과 왕자가 나오는 짤막한 동화를 지어주기도 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오늘은 벚꽃이 예쁘게 폈구나. 너도 벚꽃처럼 예쁜 사람으로 자라렴”이라고 썼다. 아이가 쉬는 시간에 고무줄놀이에서 졌다며 억울해 했다면 다음날 “이기는 것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게 더 아름다워 보여. 내가 이겼어, 네가 졌어 하고 악쓰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놀면서까지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오늘 하루는 실패한 거야”라는 편지를 넣어줬다.
10여 년간 엄마의 편지를 받은 아이들은 그 흔한 사춘기의 방황 한 번 겪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조씨는 “비록 하찮은 편지일지 모르나 아이들이 엄마의 애틋한 속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고 말했다.
테마 일기쓰기와 병 쪽지 쓰기로 글 솜씨 키워
조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테마일기를 쓰게 했다. 월요일에는 ‘나만이 아는 비밀 쓰기’, 화요일에는 ‘우리 가족 이야기’, 수요일에는 ‘주변 관찰 일기 쓰기’, 목요일에는 ‘창 밖의 이야기 쓰기’, 금요일에는 ‘내 친구 이야기’, 토요일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 일요일에는 ‘엄마아빠와 편지 쓰기’ 등 요일별로 일정한 테마를 정해 줬다. 해당 요일에는 정해진 테마로 일기를 쓰게 했다. 일기를 “오늘은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숙제하고 잤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테마 일기쓰기는 아이들의 글 솜씨뿐 아니라 관찰력과 사고력, 상상력까지 키워준다.
‘병 쪽지 쓰기’는 아이들 각자가 쓰고 싶은 글 씨앗(단어)을 예쁜 병에 담아오면 이를 이용해 하루 한 문장씩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조씨는 두유를 먹으면 생기는 빈 유리병을 활용해 ‘병 쪽지 쓰기’를 시작했다. 아이에게 하루 동안 세 개의 글 씨앗을 생각해 담아오라고 한 뒤 이 글 씨앗을 주제로 하루 한 문장씩 쓰게 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문장을 연결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글을 완성하기까지는 2~3주 가량 걸린다. 조씨는 아이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조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영어공부에만 치중하고 한국어는 문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일기 쓰기 등으로 기본적인 글 실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엌을 서재로 만들어 독서 지도
최근 ‘거실을 서재로’운동에 참여하는 가족들이 많지만, 조씨는 부엌을 서재로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예쁜 찻잔세트 등은 모두 창고로 옮겨놓고 싱크대에 책을 꽂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두 부엌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숙제를 했다. 조씨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다가 생각나는 말이 있으면 바로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엄마가 지금 동태찌개를 하려는데, 동태는 정말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명태를 얼린 것을 동태라고 하는데, 말리면 북어가 되고 내장은 아빠가 좋아하는 창란젓이 돼. 너희들도 버릴 데가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하는 식이었다.
구연동화나 판토마임도 모두 부엌 식탁에서 보여줬다. 구연동화는 시중에서 산 동화책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직접 동화를 지어서 들려줄 때도 많았다. 판토마임은 상상력과 감수성을 길러주기 위해 자주 이용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엄마가 하는 동작이 어떤 뜻인지 말로 표현하게 했다. 조씨는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행동이 큰 의미가 된다”며 “일상생활에서 아이들을 감동시키는 엄마가 돼라”고 조언했다.